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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가 지루했던 당신을 위한 해설집

크리스토퍼 놀란의 ‘애착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을 맡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흥행을 알렸다. CG 없이 완성한 핵폭발 장면,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의 오펜하이머 예언, 실존 인물과 배우들의 싱크로율까지.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진 듯 보였지만 3시간이라는 압도적 러닝타임과 ‘물리학자의 전기’라는 주제의 장벽은 꽤나 두터웠다. 관객들 중 절반은 황홀한 표정을, 절반은 물음표 가득한 표정을 머금고 […]

김 현지

<오펜하이머>가 지루했던 당신을 위한 해설집

크리스토퍼 놀란의 ‘애착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을 맡은 영화 <오펜하이머>는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흥행을 알렸다. CG 없이 완성한 핵폭발 장면,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의 오펜하이머 예언, 실존 인물과 배우들의 싱크로율까지.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진 듯 보였지만 3시간이라는 압도적 러닝타임과 ‘물리학자의 전기’라는 주제의 장벽은 꽤나 두터웠다.

관객들 중 절반은 황홀한 표정을, 절반은 물음표 가득한 표정을 머금고 극장을 빠져나온 것이 그 두터운 장벽의 방증. 영화를 보는 내내 온갖 질문들을 던지다 결국 지루함에 잠식되어 버린 관객이라면 아래에 소개할 ‘<오펜하이머> 해설집’을 천천히 훑어보자.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 핵분열처럼 끝없이 이어질지도 모르니.

*영화 <오펜하이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주관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이 내포하고 있는 것들

뛰어난 감독, 배우, 연출, 기획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맞아떨어지며 공개 전부터 ‘대작’이라는 칭호를 달게 된 영화 <오펜하이머>. 이 영화가 대작으로 불리는 또 다른 이유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20세기 미국과 당시 과학자들의 생태계, 더 나아가서는 핵 개발에 따른 인류의 진화에 투영했기 때문이다. 모순으로 가득한 그의 삶과 절묘하게 떨어지는 당시의 상황들. 

원자폭탄을 개발하며 ‘어떻게 하면 더 큰 폭발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오펜하이머는 노력 끝에 우라늄을 활용한 핵분열을 성공시켰다. 인류에게 스스로를 무너뜨릴 무기를 쥐여준 그가 역설적이게도 과학적 측면에서 인류를 더 나아가게 한 것. 이러한 모순들은 원자폭탄이 사용되는 순간에도 적용되었다.  평화를 얻기 위해 오펜하이머는 ‘너무 높이 떨어뜨리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등 원자폭탄의 살상력을 높일 수 있는 조언을 건넸고, 많은 목숨을 앗아간 원자폭탄의 위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냈다. 

이러한 모순들은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오펜하이머 개인의 삶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저 과학자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던 오펜하이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의 사과에 독극물을 주사함으로써 과학의 결과물을 ‘사용하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자신이 집이라고 일컬으며 애정을 표했던 뉴멕시코의 로스앨러모스를 파멸의 시작점으로 설정하였으며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들에게 이끌렸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삶과 원자폭탄이라는 전례 없던 무기를 갖게 된 미국의 상황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모순’이라는 키워드를 적용해 본다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바를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영화의 구조

<오펜하이머>가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는 데에는 ‘구조’의 역할이 컸다. 오펜하이머의 청문회와 스트로스의 청문회,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회상들을 뒤섞으며 전개해 나가는 후반부가 평론가들의 감탄사를 불러일으킨 것. 특히 <메멘토>에서도 사용되었던 컬러와 흑백의 혼합 사용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짜낸 영화의 구조를 더욱 촘촘하고 탄탄하게 만든 요소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스트로스의 상원 청문회는 흑백, 오펜하이머의 청문회는 컬러. 청문회를 통해 파멸을 맞이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 두 인물의 장면들은 서로 교차 대비되며 전개된다. 

이 청문회 파트는 <오펜하이머>라는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들과도 의미가 부합한다. 오펜하이머의 청문회는 원자폭탄을, 스트로스의 청문회는 수소폭탄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 원자폭탄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것처럼 오펜하이머가 했던 선택들은 이어지고, 이어져서 청문회라는 거대한 파멸을 야기했다. 때문에 그의 청문회 파트에서는 그가 했던 선택들과 그 결과들이 끊임없이 회상되는 것. 하지만 스트로스의 청문회 파트에서는 스트로스의 과거 대신 그가 오펜하이머에게 행했던 일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폭탄’은 그 이전에 원자폭탄에서 사용되는 핵분열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 스트로스의 파멸은 결국 오펜하이머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수소폭탄 vs 원자폭탄’이라는 플롯은 스트로스와 오펜하이머의 대립 관계에서 끊임없이 적용된다. 원자폭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희귀했지만, 수소폭탄에 사용되는 수소는 흔했다. 오펜하이머는 특별했지만 스트로스는 평범했다. 하지만 둘 다 파멸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폭탄’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아인슈타인과의 대화를 구태여 넣은 이유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아인슈타인을 만나는 장면. 실제로 둘은 함께 프린스턴 대학에 재직한 기록이 있지만 둘이 연못가에서 나눈 대화는 철저히 픽션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왜 이런 가상의 장면을 반복해서 넣었을까?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관계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는 아인슈타인을 오펜하이머는 ‘한때 잘 나갔던 과학자’ 정도로 깔봤지만, 동시에 가장 큰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그를 찾아갔다. <오펜하이머>의 가장 큰 키워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 

또,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핵분열’의 연쇄반응처럼 기존의 인물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끝없이 마주한다. 소개의 소개의 소개를 통해 연쇄적으로 인물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 하지만 아인슈타인만큼은 예외였다. 스트로스가 아인슈타인을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는 “이미 잘 아는 사이에요”라고 답하며 직접 아인슈타인을 만나러 간다. 

이는 오펜하이머가 끊임없이 마주했던 인물 간의 ‘연쇄반응’ 공식이 그에게만큼은 적용되지 않는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비로소 자신이 권력자들의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파멸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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