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은 런웨이
2004년 존 갈리아노의 맨즈웨어 컬렉션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퍼렇게 멍든 눈으로 코피를 흘리며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모습. 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이후로도 패션계에서는 종종 멍든 얼굴의 모델들이 등장했다. 한 시즌의 패션 트렌드를 선보이는 런웨이에서 모델들은 왜 상처투성이가 되어야만 했을까. 남자다움 2015년 1월 12일 중국 디자이너 […]
2004년 존 갈리아노의 맨즈웨어 컬렉션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퍼렇게 멍든 눈으로 코피를 흘리며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모습. 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이후로도 패션계에서는 종종 멍든 얼굴의 모델들이 등장했다. 한 시즌의 패션 트렌드를 선보이는 런웨이에서 모델들은 왜 상처투성이가 되어야만 했을까.
남자다움
2015년 1월 12일 중국 디자이너 ‘샹관 저(Shangguan Zhe)’의 런던 ‘산쿠안즈(SANKUANZ)’ 남성복 컬렉션 모델들은 얼굴에 멍과 상처를 그린 채 등장했다. 마치 쇼 직전 싸움이 있었던 듯 보였지만 이는 모두 메이크업. 디자이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마리아 콤페레토(Maria Comperetto)’에게 아름답지만 동시에 단단해 보이도록 상처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고, 콤페레토는 자신이 메이크업한 모델들의 얼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파이트 클럽(영화)의 장난스러운 변주”라며 ‘#beautifulbruises(아름다운 멍들)’을 해시태그 했다.
샹관 저의 컬렉션은 폭력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록 그들이 ‘만화적인’ 그리고 ‘장난스러운’ 이미지로 보이도록 의도했다고 하더라고 실제 멍과 똑같은 메이크업을 패션쇼 런웨이에서 선보인다는 것은 폭력 피해자들에게 다시금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할 ‘트리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어나자 메이크업을 했던 콤페레토는 ‘만약 여성 모델에게 멍을 그려 달라 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건 그냥 남자가 남자답게 하는 거예요. 장난스러운 거였죠. 그냥 일종의 연극이었을 뿐이에요.”
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답변이었다. 여성의 상처는 즉시 어떠한 사건과 직결되지만 남성의 경우, ‘남자다운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남성성과 폭력성을 동일시한다고 할 수 있을 터. 과연 폭력은 남성을 더욱 남성답게 해주는 것인가? ‘남성다움’이라는 것의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멍든 얼굴의 슈퍼모델
그렇다면 과연 패션계에서 멍든 얼굴을 한 여성은 없었을까? 아니다. 수많은 화보와 매체에서 상처와 멍투성이가 된 얼굴의 여성들이 ‘컨셉’이라는 명목 하에 지속해서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3년 10월 ‘모왈롤라’의 2024 S/S 컬렉션 쇼, 슈퍼모델 ‘이리나 셰익(Irina Shayk)’이 검게 멍든 눈과 입술로 등장하자 ‘모왈롤라’는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디자이너 ‘모왈롤라 오굴레시 (Mowalola Ogunlesi)’는 해당 컬렉션의 영감을 <Crash>라는 영화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영화 속 ‘충돌에 의해 생기는 고통의 페티시즘’에 흥분했으며 거리에 온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나중에 멍든 모델들의 사진을 트위터에 업로드하며 “우리는 고통을 피하지만, 고통이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마야 프렌치(Isamaya Ffrench)’는 인스타그램에 멍든 눈 메이크업 사진을 올리며 ‘차 사고 메이크업’이라 글을 적었다. 게시물에는 수많은 네티즌들이 학대를 미화한다고 비난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한편 ‘우먼 에이드(Woman Aid’s)’의 최고 경영자인 ‘파라 나지어(Farah Nazeer)’는 멍은 패션 액세서리가 아니라며 해당 쇼에 일침을 가했다. 덧붙여 그녀는 “런던 패션 위크 쇼는 수백만 명이 시청할 것이고, 가정 내 폭력을 장식하는 행위는 불쾌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패션과 폭력
패션계에서 폭력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주요 소재가 되어왔다. 익숙하기에 더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만, 그래서 더 위험한 것 아니겠는가?
가장 유명한 사례인 1995년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Highland Rape’ 컬렉션. 맥퀸은 해당 컬렉션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로맨틱하게 표현한다며 언론에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맥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어서 이 쇼가 여성들이 강간당하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Highland Rape’는 영국이 스코틀랜드를 강간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006년 ‘지미 추(Jimmy Choo)’ 광고에서는 가수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열린 차 트렁크에 걸터 앉아 삽을 들고 있었고, 그 옆에는 여성 모델이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2007년 ‘돌체 & 가바나(Dolce & Gabanna)’의 광고는 소위 ‘갱단 강간’ 광고로 불리며 파문이 일어났었다. 광고 속 여성 모델은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남성 모델에 의해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23년 10월 ‘도자 캣(Doja cat)’은 멍든 눈과 찢어진 입술로 발렌시아가쇼의 참석했다. 그녀는 자신이 상처 메이크업을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게 제 첫 번째 패션위크라서 즐겁지만 너무 힘들어요. 그런 제 심경을 메이크업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도 제 속눈썹은 정말 예뻐요.”
폭력의 미학
우리는 본능적으로 폭력에 이끌린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보호 본능의 수단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파멸에 이끄는 ‘타나토스(죽음 본능)’로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본능에 이끌린 대로 행동한다면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스스로를 폭력을 정당화하게 할까?
폭력의 미화는 주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 매체에서 이루어졌다. ‘정의’란 이름의 탈을 뒤집어쓴 채, 악에 맞서는 폭력은 사람들에게 쉽게 정당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멋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앞서 언급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콤페레토가 멍든 얼굴을 한 모델들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영화 <파이트 클럽>을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폭력에 관한 20세기 대중 매체의 역사는 대체로 이러했다. 선과 악의 구분을 넣어 ‘선한’ 폭력은 마치 정의로우며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 폭력적인 이미지에 길들여져 있었다. 피해자의 폭력은 끔찍하나 ‘정의로운 폭력’은 정당하고 아름다우며 그로 인해 생긴 상처와 멍은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