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 마음껏 질투해
우리는 입으려고 옷을 산다. 그런데 여전히 패션쇼를 보면 입지도 못할 옷을 왜 만드는지 이해를 못 할 때가 있다. 인간이 생활하기 위한 필수 요소 ‘의식주’ 중 ‘의’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아마 그럴 때 일 것. 여성복 해방의 상징 ‘코코 샤넬’이 추앙받는 이유 역시 불편했던 여성들의 옷을 실용적으로 바꿔 대중화 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
우리는 입으려고 옷을 산다. 그런데 여전히 패션쇼를 보면 입지도 못할 옷을 왜 만드는지 이해를 못 할 때가 있다. 인간이 생활하기 위한 필수 요소 ‘의식주’ 중 ‘의’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아마 그럴 때 일 것.
여성복 해방의 상징 ‘코코 샤넬’이 추앙받는 이유 역시 불편했던 여성들의 옷을 실용적으로 바꿔 대중화 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스키아파렐리’의 의상은 꽤나 독특하다. 사자, 호랑이 등 짐승의 머리가 달린 드레스를 선보인 ‘2023S/S 오트 쿠튀르’와 미래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우주의 기운이 담긴 듯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2022S/S 오트 쿠튀르’를 보면 심상치 않다.


지옥에서 나온 듯한 도자 캣의 올 레드 크리스탈 드레스 역시 ‘스키아파렐리’의 현 디자이너 ‘다니엘 로즈베리’가 만든 것이다.

이미 수많은 의상들이 ‘아카이브’가 되어 ‘오마주’, ‘복각’ 등의 이름으로 재해석되곤 하는데, ‘스키아파렐리’의 컬렉션에서는 뭐를 닮았다고 말하기 꽤나 애매한, 신선한 작품들이 나타난다.
‘스키아파렐리’의 옷들은 하우스의 설립자이자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뜻을 이어받았다. 그녀가 디자인한 옷은 실용적인 의복과 거리가 매우 멀었기 때문.

그런데 여성복의 대가라고 불리는 ‘코코 샤넬’은 질투했다. 우리 입에서 “이게 뭐야”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게 하는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예술을.
코코 샤넬은 스키아파렐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옷 잘 만드는 이탈리아 아티스트잖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엘사 스키아파렐리’. 그녀는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예술과 지식을 곁에 두고 살았다. 오페라, 콘서트, 글쓰기, 철학 등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온 덕에 그녀가 가진 상상력과 지식이 남들과 다를 수밖에.
첫 컬렉션부터 성공적이었다. 1927년, 눈속임을 뜻하는 ‘트롱프뢰유’ 기법을 활용하여 진짜 리본이 달린 듯한 스웨터를 만들며 디자이너로서 첫걸음을 뗀다.

실물처럼 보이는 스카프가 그려진 것이라니. 꽤나 매력적인 의상을 본 여러 배우들과 귀족들은 스키아파렐리의 옷을 입어보고 싶어 했다.
보그 잡지에서도 그녀의 옷을 ‘예술적인 걸작’이라고 칭할 정도였다고.
그렇게 여러 유명 인사들에게 러브콜을 받으며 패션계의 가장 핫한 인물로 우뚝 서게 된다.
실용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그녀의 디자인은 ‘살바도르 달리’, ‘마르셀 뒤샹’ 등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예술가들의 눈에 띄게 되고, 이들과 ‘예술’로서 협업을 했다.

그녀와 함께한 예술가들이 초현실주의 예술계에서 ‘스키아파렐리’라는 이름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미래에도 입을 수 있을까 싶은 아방가르드한 옷, 스키아파렐리의 옷이 아예 실용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키아파렐리는 실용적인 재료로 대표되는 ‘지퍼’를 쿠튀르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당시 지퍼는 옷에 사용되기 보다, 부츠나 가방에 주로 사용되었다. 드레스에 지퍼를 다는 시도와 성공 덕분에, 여러 가지 지퍼가 달린 옷들을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
치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지인 ‘디바이디드 스커트’도 그녀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플라스틱, 금속 등 옷에 사용되는 재료로는 특이한 것들을 고급 패션에 도입하며, 인조 섬유 개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최초 또 최초, 아티스트라서 가능했다
지퍼를 쿠튀르에 처음 사용했듯, 스키아파렐리는 패션계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여전히 ‘오트 쿠튀르’하면 기성복과는 확실한 차별점, 약간의 우월감 정도가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대중과 패션쇼가 더 친해진 이유에도 스키아파렐리의 입김이 있었다.

서커스, 불꽃놀이나 이탈리아 전통의 희극 등 다양한 볼거리를 컬렉션에 적용하고, 패션쇼에서 보여주었다. 컬렉션 주제에 맞춰 음악을 갖추는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고.
하이패션에 가벼움과 대중예술을 융합 시킨다는 것은 패션계 인물들의 높은 콧대를 누른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이성’과 ‘합리적’인 것에 반하는 초현실주의자였던 스키아파렐리에게 최초란 수식어는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달리의 바닷가재 전화기에서 영감을 받은 랍스터 드레스, 르네의 발이 드러난 신발이 떠오르는 손톱이 있는 장갑 등 옷으로 예술을 하던 초현실주의 ‘패션 예술가’ 스키아파렐리.
샤넬과 그녀는 1920년대 최고의 라이벌 디자이너였다. 상품과 작품이라는 방향성이 달랐을 뿐. 코코 샤넬은 그녀의 예술적 면모를 질투했다. 어쩌면 서로를 비교하려 사람들이 몰아붙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스키아파렐리를 ‘아티스트’라고 칭한 이유 역시 옷으로 ‘예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코코 샤넬만큼이나 스키아파렐리를 패션 디자이너보다는 ‘패션 예술가’로 바라보는 시선이 더 많지 않은가.

코코 샤넬만큼 현대의 패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스키아파렐리. 이제는 패션쇼 혹은 지퍼 달린 옷을 볼 때, ‘스키아파렐리’라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