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유튜브가 비디오 스타를 죽이고 있다

1981년, 세계 최초의 24시간 음악 채널 MTV가 미국 전역에 전파를 쏘아 올렸다. 오전 12시 1분에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발사되는 장면, 이어 아폴로 11호에 탄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에 MTV 깃발을 꽂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렇게 음악의 역사가 새로이 시작되었다.  MTV에서 최초로 송출된 뮤직비디오는 버글스(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다소 도발적인 음악과 함께 […]

이 혜진

1981년, 세계 최초의 24시간 음악 채널 MTV가 미국 전역에 전파를 쏘아 올렸다. 오전 12시 1분에 최초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발사되는 장면, 이어 아폴로 11호에 탄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에 MTV 깃발을 꽂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렇게 음악의 역사가 새로이 시작되었다. 

MTV에서 최초로 송출된 뮤직비디오는 버글스(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였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다소 도발적인 음악과 함께 라디오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TV는 곧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되었고, 뮤직비디오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MTV는 수많은 ‘스타’들을 발굴해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다. 그의 대표곡 Billie Jean은 처음에 송출을 거부당했다. ‘MTV는 록 중심 채널이기에 송출이 불가능하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상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차별이었다. 결국 CBS 레코드의 압박과 법적 제재 끝에 방송이 이루어졌다. 

바야흐로 TV 앞에 앉아 있던 이들의 눈이 번쩍 열리던 순간이었다. 문워크가 담긴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는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고, 앨범 [Thriller]는 수천만 장이 팔리며 팝의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MTV가 만들어낸 슈퍼스타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돈나 역시 MTV 시대의 전설이었다. 첫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미발매곡 Like a Virgin을 부르던 그녀의 퍼포먼스는 시대를 가르는 장면이 됐다.

“그녀가 술을 몇 잔 마셨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게 기어다니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으니까.”

당시 마돈나는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지만, 그 한 번의 무대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결국 그녀는 성공의 문턱을 넘어섰다.

MTV는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 에이브릴 라빈 등의 수많은 스타들과 전성기를 함께 달렸다. 음악의 소비 방식이 달라졌고, 뮤직비디오는 이제 아티스트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여기서 MTV는 단순한 채널이 아니라 문화의 심장부였다.

그리고 2025년, 시대는 또다시 거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MTV는 영국 내 다섯 개 음악 채널의 폐쇄를 발표했다. MTV Music, MTV 80s, MTV 90s, Club MTV, MTV Live는 모두 12월 31일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남은 건 단 하나. 리얼리티와 연애 프로그램을 주력으로 하던 ‘MTV HD’ 채널뿐이다. 현지 매체는 곧 프랑스·독일·브라질, 어쩌면 미국에서도 MTV 채널 폐국이 이어질 것이라 전했다.

“우리는 아티스트들을 계속 응원해야 한다.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도 가능한 일이지만, MTV는 모든 것이 한데 모이던 곳이었다. 마음이 아프다.” – 전 MTV VJ 시몬 엔젤

사람들은 MTV를 두고 ‘이제 유튜브가 비디오 스타를 죽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이제는 유튜브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비디오 스타를 죽이고 있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TV 앞에 앉아 채널을 넘기지 않는다. 손안의 화면에서, 이동 중에도, 침대에서도, 언제든 원하는 음악과 영상을 호출할 수 있다. 플랫폼의 중심축은 자연스럽게 TV에서 스트리밍으로 이동했다.

게다가 몇몇 아티스트의 경우 이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지 않고 있다. 음원 사이트 내 스트리밍 수는 폭발적으로 치솟는 반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뮤직비디오는 예전만큼의 파급력을 가지지 못한다.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구조 속에서, ‘뮤직비디오’라는 형식 자체가 다시 한번 질문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음악 역사에 하나의 마침표가 찍혔다. 과연 스트리밍 시대는 마침표를 쉼표로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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