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때문에 이름을 가렸다
여기저기 친환경, 슬로우 패션, ‘지속 가능성’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요즘. 친환경 패션계에도 비틀즈만큼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 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그녀의 유명세를 ‘아버지 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수많은 네포 베이비들이 연예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그러나 스텔라 매카트니는 조금 달랐다. 실력 없는 네포 베이비들과는 확실히 다른 ‘재능’이 그녀에게는 있다. […]

여기저기 친환경, 슬로우 패션, ‘지속 가능성’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요즘. 친환경 패션계에도 비틀즈만큼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
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그녀의 유명세를 ‘아버지 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수많은 네포 베이비들이 연예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그러나 스텔라 매카트니는 조금 달랐다.

실력 없는 네포 베이비들과는 확실히 다른 ‘재능’이 그녀에게는 있다. 15살에 프랑스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루아’의 첫 쿠튀르 컬렉션을 도왔고, 영국의 수트 성지, ‘새빌 로우’에서도 오랜 기간 내공을 쌓아왔기 때문.
그녀는 매카트니라는 이름의 힘보다는 실력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름부터 숨겼다

좋은 집, 좋은 환경. 스텔라 매카트니의 환경은 무얼 하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이유야 뭐 아버지가 폴 매카트니였으니까. 그의 딸이라는 것만으로 어딜 가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거부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아버지라는 환경을 이용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버지의 음악적 업적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자신을 위해 이용할 생각도 없었다. 이는 그녀의 학창 시절 때부터 잘 드러난다. 사립이 아닌 지방 공립 학교에서 ‘스텔라 매카트니’라는 이름 대신 가명 ‘스텔라 마틴’으로 살려고 노력했다고.

라크루아 쿠튀르, 셰빌 로우에서 기초를 다진 후 그녀는 런던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등용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들어갔다. 1995년, 스텔라 매카트니의 졸업 패션쇼는 아마 그날 패션계의 가장 핫한 쇼가 아니었을까. 학생 졸업 패션쇼에 나오미 켐벨과 케이트 모스 등 탑 모델들이 대거 등장했다. 물론 이들은 스텔라 매카트니의 친한 친구로서 도와주러 왔던 것이라고.



추락하는 끌로에, 날개를 달았다

학교도 졸업했겠다,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스텔라 매카트니. 어릴 때부터 패션에 재능을 보였으나 폴 매카트니라는 이름이 그녀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끌로에의 눈에 스텔라 매카트니가 들어왔다. 칼 라거벨트가 떠난 후 빈자리가 꽤나 컸던 끌로에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1997년부터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됐다. 졸업하자마자 사령관이 된 셈.
부임 당시에만 해도 폴 매카트니의 이름으로 마케팅하려고 데려온 것이다 같은 의심 가득한 소리가 잔뜩 있었다. 갓 졸업한 디자이너가 칼 라거펠트의 자리를 이어받는다니. ‘아버지가 폴 매카트니잖아’. 충분히 그렇게 보이고, 보고 싶어 할 만하다. 스텔라 매카트니를 평가 절하하기 가장 좋은 명분이었다. 물론 인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그러나 스텔라 매카트니는 증명했다. 그녀가 끌로에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이자마자 그들의 의심을 모두 ‘성공’이라는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다른 브랜드에 영향을 주었을 만큼 매력적인 그녀의 컬렉션은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피플지 인터뷰를 통해 그녀에게 날 선 말을 했던 모두에게 전했다.
“아버지가 누구라서 나에게 모든 걸 맡길 정도로 끌로에는 멍청하지 않아.
나는 끌로에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공기야”

소녀 같지만 화려한, 그렇다고 클래식과 고급스러움을 놓치지 않은 스텔라 매카트니는 2000년 보그 ‘패션 앤 뮤직 디자이너 오브 더 이어’에서 상을 받으며 폴 매카트니의 딸이 아닌 ‘패션 디자이너’로 제대로 거듭나게 된다.



어머니는 나의 평생 뮤즈

“나의 어머니 린다는 내 모든 영감의 원천이자, 영원한 뮤즈다.
‘린다’는 ‘사랑’ 그 자체다.”
-<W>, 스텔라 매카트니
스텔라 매카트니는 어머니 ‘린다 매카트니’가 자신의 뮤즈라고 밝혔다. 린다는 영국 예술계 정상에 있는 두 명의 뮤즈인 셈.
린다 매카트니는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60년대 전성기 시절에는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롤링스톤즈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사진을 찍었고, 여성 최초로 <롤링 스톤지> 표지를 장식할 정도였다.

그녀는 채식주의자, 동물권 운동가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모피 방지 단체에 기부하고, 직접 발로 뛰며 동물 보호를 실천했다. 채식주의를 대중에게 열심히 퍼뜨린 거도 그녀였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매출이 많은 채식주의 식품 브랜드 중 하나가 ‘린다 매카트니 푸드’일 정도니, 그 영향력은 가히 대단했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친환경 패션은 가족에게서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녀는 구찌와 손을 잡고 동명의 디자이너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를 전개하며 모피를 쓰지 않고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친환경 패션을 얘기할 때, 패션계에서 ‘스텔라 매카트니’ 그녀의 이름이 먼저 떠올릴 것. 원래는 구찌가 가죽으로 유명한 기업이라 함께 하자는 제안을 거절했었다.
결국 잠시 함께 했지만, 톰 포드의 뒤를 이을 수석 디자이너 자리도 거절했다. 케링에서 시작한 브랜드였지만 모피나 가죽을 절대 사용하지 않으며 스텔라 매카트니는 자신의 철학을 단단히 지켰다.

네포 베이비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평가 절하를 당했지만, 결국 성공을 거머쥔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 부모님이 벌어놓은 돈이 아닌 자기 자신의 실력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반했다. 영국 어린아이들의 우상이 될 정도라고.
하이패션에 친환경을 도입했던 스텔라 매카트니. 모든 제품을 비건으로,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을 주도하는 그녀의 정신은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계승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