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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가수가 돌아왔다’ 슈가맨, 식스토 로드리게즈

Six 사라진 가수를 찾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의 모티브가 된 인물, ‘식스토 로드리게즈(Sixto Rodriguez)’에 대해 알아보자.  식스토 로드리게즈는 그 이름도 유명한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의 히스패닉에서 태어났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한 가정의 여섯째로 태어났는데, 그의 이름이 ‘식스토(Sixto)’인 이유다.  그의 삶은 평범했다. 동네에 있었던 웨인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후, 일을 하며 저녁이면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유로운 인생을 살았다.  […]

황 진하

‘죽은 가수가 돌아왔다’ 슈가맨, 식스토 로드리게즈

Six

사라진 가수를 찾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의 모티브가 된 인물, ‘식스토 로드리게즈(Sixto Rodriguez)’에 대해 알아보자. 

식스토 로드리게즈는 그 이름도 유명한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의 히스패닉에서 태어났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한 가정의 여섯째로 태어났는데, 그의 이름이 ‘식스토(Sixto)’인 이유다. 

그의 삶은 평범했다. 동네에 있었던 웨인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후, 일을 하며 저녁이면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유로운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가창력은 남달랐다. 매번 뛰어난 라이브를 선보였고, 우연하게 그의 공연을 보게 된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소유의 레코드 제작사 ‘모타운 레코드(Motown Recird)’ 산하 레이블인 서섹스 레코드의 눈에 띄게 됐다. 빛나는 목소리, 녹슨 앨범

담백하지만 특유의 자유로운 감성이 느껴지는 식스토의 목소리는 프로듀서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집 [Cold Fact]는 발매 전부터 성공이 점쳐지며 큰 기대를 받았다. 

디트로이트 최고의 레코드 제작사와 훌륭한 목소리, 유명 프로듀서의 합작으로 완성된 대망의 1집 [Cold Fact]는 1970년에 공개됐고, 결과는 제작사와 가수, 프로듀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앨범 판매량이 단 여섯 장에 그쳤기 때문. 심지어 가족과 프로듀서가 구매한 수량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1집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뒤로하고, 식스토는 1971년에 2집 [Coming from Reality]를 발매했다. 하지만 2집 역시 1집처럼 아쉬운 결과를 보여줬고, 제작사는 그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무지갯빛 꿈으로 돌려줘

계약 해지 후에 식스토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저조한 앨범 성적에 그를 알아보는 이는 거의 없었고, 일상으로의 복귀는 빠르게 이뤄졌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잊혀 갔다. 

하지만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 식스토와는 반대로 그의 노래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1집 앨범 [Cold Fact]의 몇 안 되는 구매자 중 한 명이었던 여성이 남아공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노래를 들려준 것. 당시 남아공은 인종을 분리 및 차별하는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로 어지러웠고, “난 여기 상황에 질렸어, 새파란 동전 한 닢 줄 테니, 무지갯빛 꿈으로 돌려줘”라는 가사가 담긴 1집 앨범의 수록곡 ‘Sugar Man’은 지쳐있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줬다. ‘슈가맨을 찾아라’

식스토는 본인이 바다 건너 먼 남아공 땅에서 록큰롤의 황제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남아공에서는 가슴을 울리는 선율과 가사로 암울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준 영웅 ‘식스토 로드리게즈’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당시 식스토는 디트로이트에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하지만 남아공 국민들은 그가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작은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 그래서 식스토를 찾는 프로젝트는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가 아닌,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어서 와, 근데 어떻게 찾았어?’

식스토를 찾는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당시 중고 음반을 판매하던 ‘스테판 시거맨’과 음악 평론가 ‘크레이그 바솔로뮤’가 있었다. 이 둘은 식스토의 음악을 즐겨듣는 열성팬이었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식스토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워낙에 알려진 정보가 없었기 때문.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이들은 식스토의 노래 가사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 1집 앨범에 수록된 ‘Inner City Blues’라는 곡이었는데, 가사에 ‘디어본(Dearborn)’이라는 지명이 등장한 것. 이를 토대로 슈가맨 식스토가 미국 디트로이트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결국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크레이그 바솔로뮤는 1집 앨범 [Cold Fact]의 프로듀서가 마이크 티어도어라는 사실을 밝혀냈고,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바솔로뮤는 “식스토 로드리게즈는 어디서 어떻게 죽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그를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다. 남아공의 영웅, 식스토 로드리게즈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

놀라운 사실은 ‘식스토 로드리게즈를 발견!! 죽은 가수를 찾았다’라는 기사와 함께 퍼져나갔고, 1998년 3월, 남아공에서 식스토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서칭 포 슈가맨>

한편의 영화 같은 식스토의 슈가맨 스토리는 정말 ‘영화’로 제작됐다. 그의 놀라운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미국에선 ZERO, 남아공에선 HERO?! 팝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가수, ‘슈가맨’의 놀라운 이야기!’라는 소개와 함께 공개됐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 평론가는 <서칭 포 슈가맨>이 왜곡된 사실을 알려준다며 반발했다. 사실 식스토 로드리게즈는 1970년대 말에 남아공보다 호주에서 먼저 스타덤에 올랐었기 때문! 무려 1만 5천 석 규모의 단독 콘서트도 진행할 정도로 호주에서 큰 인기를 모았고, 식스토 본인 역시 인생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느낀 순간을 호주에서의 공연이라고 답했다. 물질적 만족은 부질없다

호주, 남아공은 물론이고 식스토의 인기는 2000년대부터 유럽권까지 확대됐다. 심지어 영화 <서칭 포 슈가맨>까지 흥행에 성공했고, 오스카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까지 수상하면서 식스토는 늦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물론 그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공연 수익만 따져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그는 얼마든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부러움을 살만한 거대한 집, 멋진 차, 반짝이는 시계 따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2집 앨범 [Coming From Reality] 커버 사진을 장식한 디트로이트 빈민가의 허름한 집에서 계속 살았으며 작은 사치도 부리지 않았다.(심지어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서칭 포 슈가맨>이 오스카에서 수상한 것조차 딸이 알려줘서 알았다) 

아무도 모르는 잊힌 가수가 될 뻔했던 식스토 로드리게즈, 남아공과 호주의 국민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었던 그의 음악을 지금 바로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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