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에게서 10대의 향기가 나는가
‘너바나(Nirvana)’는 모두가 인정하는 90년대 최고의 록 밴드다. 크리스 노보셀릭과 데이브 그롤, 커트 코베인의 조합은 환상적이었고 1987년부터 그룹이 해체된 1994년까지, 활동 기간 동안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벌써 하품이 나오는가? 알고 있다, 너바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너바나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준수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던 ‘커트 도널드 코베인(Kurt Donald Cobain)’에 대한 이야기는 […]
‘너바나(Nirvana)’는 모두가 인정하는 90년대 최고의 록 밴드다. 크리스 노보셀릭과 데이브 그롤, 커트 코베인의 조합은 환상적이었고 1987년부터 그룹이 해체된 1994년까지, 활동 기간 동안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벌써 하품이 나오는가? 알고 있다, 너바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너바나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 준수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던 ‘커트 도널드 코베인(Kurt Donald Cobain)’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가, 흥미가 생기는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하고, 우울증에 시달렸던 커트 코베인의 인생에 대해 조금은 깊게 알아보자.
‘중산층인 척하는 화이트 트래시의 가난한 집’
커트 코베인은 1967년 2월 20일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했고, 아버지는 자동차를 고쳤다. 나이도 굉장히 어렸는데 그가 태어나던 당시에 어머니 웬디는 19살, 아버지 도널드 코베인은 21살이었다. 부모님의 직업과 나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커트 코베인의 어린 시절 환경은 좋지 못했다. 아니, ‘많이 어려웠다’고 쓰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가족은 나를 지켜주지 못해’
결국 가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코베인이 불과 9살이었을 때, 웬디와 도널드 코베인은 이혼했다. 둘의 이혼은 커트 코베인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밝고 활기차던 그의 성격은 이혼을 기점으로 180도 바뀌었다. 재혼을 하지 않겠다던 아버지는 약속을 깨고 제니 웨스테비와 재혼했고, 어머니 웬디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망나니와 연애를 시작했다. 부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커트 코베인, 그의 증오와 분노는 불처럼 커져갔다.
‘시작된 음악 활동’
일탈을 일삼던 커트 코베인은 결국 다니던 애버딘 고등학교에서 졸업을 2주 앞둔 채 퇴학당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집에서 쫓겨났다. 버림받았다는 괴로움을 안은 채 친구네 집으로 들어간 커트 코베인, 그는 이때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한다. 그룹의 이름은 ‘피컬 메터’였는데 멤버 중에는 멜빈스의 디러머 ‘데일 크로버’도 있었다. 그들은 주로 다른 유명 아티스트들의 곡을 커버했다. 이 과정에서 커트 코베인은 밴드 멜빈스와 함께 다녔는데, 이때 그들의 소개로 향후 너바나의 멤버가 되는 크리스 노보셀릭을 만나게 된다.
‘우리 한번 만들어 보자’
피컬 매터의 해산 이후 함께 밴드를 결성할 멤버를 애타게 찾고 있던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과의 만남은 그에게 간절한 기회였다. 코베인은 피컬 매터 활동 당시에 만들었던 데모 테이프를 건네며 너바나 결성을 제안했다. 몇 달간의 설득 끝에 크리스 노보셀릭이 제안을 수락했고, 그렇게 역사에 남을 밴드 ‘너바나(Nirvana)’가 탄생했다.
‘NEVERMIND’
너바나가 결성되고 2년 후인 1989년, 1집 <Bleach>가 발매됐다.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았기에 인디신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먼저 그는 주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 드러머 채드 채닝을 내보냈다. 그리고 데이브 그롤을 새롭게 영입하는데, 드디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 너바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야망이 컸던 커트와 크리스는 메이저 레이블 계약을 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너바나의 음악을 들어주길 바랐기 때문. 결국 너바나는 게펜레코드 산하의 레코드사와 계약하는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그 유명한 프로듀서 ‘부치 빅(Butch Vig)’과 만나게 된다. 그렇게 1991년에 전 세계적으로 8천만 장 이상의 음반이 팔린 전설의 앨범, 너바나의 2집 <NEVERMIND>가 세상에 공개된다.
‘십 대 정신의 향기가 나는구나’
너바나의 2집 <NEVERMIND>는 모두가 알다시피 메가 히트를 쳤다. 특히 수록곡 ‘Smells Like Teen Spirit’의 반응이 남달랐는데, 심지어 당시 미국 음악 신(SCENE)을 꽉 잡고 있던 마이클 잭슨마저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앨범은 음악의 판도를 흔들었고, 너바나를 필두로 한 그런지 밴드 열풍을 가져왔다.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았던 음악’
커트 코베인은 열약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곁에 음악이 맴돌았다. 그가 너바나를 만들고, <NEVERMIND>라는 명반을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변으로부터 받은 영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커트 코베인은 영국의 또 다른 밴드, ‘비틀스(Beatles)’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너바나의 1집 앨범 <Bleach>에 수록된 곡 ‘About a Girl’을 만들 때 비틀스의 두 번째 음반 <Meet the Beatles!>를 세 시간 넘게 들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가 이토록 비틀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 계기가 재밌는데, 커트 코베인이 두 살이었을 때 그의 이모였던 마리 코베인은 <Hey Jude>를 들려줬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비틀스의 음반을 계속해서 가져왔고, 자연스럽게 커트 코베인은 어린 시절부터 그들의 음악을 즐겨 듣게 된 것.
코베인에게 음악적 영향을 미친 마리 코베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2살 때부터 노래를 불렀으며 4살이 됐을 때는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어린 나이부터 작곡까지 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성공이 불러온 혼란’
너바나의 <NEVERMIND> 성공은 되려 커트 코베인의 우울증을 증폭시켰다. 앨범의 성공으로 너바나는 갑자기 너무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커트 코베인은 쏟아지는 언론의 공격과 마주해야만 했다. 그는 심각한 마약중독자였다. 당연하게도 언론과 대중은 그의 삶에 깊숙이 관여했고, 심각한 헤로인 중독자였던 그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싫었던 커트 코베인은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본인은 마약 중독자가 아니라며 거짓말을 했다.
‘제발 아무도 듣지 마세요’
커트 코베인은 ‘원 히트 원더 밴드’로만 기억될 것이라는 부담감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의 성공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곡을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감은 분명 엄청났을 것. 하지만 그는 이 모든 부담과 압박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딸 프란시스 코베인이 있었다.
그렇게 너바나의 세 번째 앨범 <In Utero>가 발매됐다. 앨범에는 너바나의 멜로딕 한 성향이 잘 담겼고, <NEVERMIND> 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한 평가와 성적을 기록했다.
‘그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너바나의 세 번째 앨범 <In Utero>가 발매된 지 불과 1년이 지난 1994년, 커트 코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7살이었다.
그는 1994년 3월 30일에 로스앤젤레스 엑소더스 재활원에 입원했다. 마약중독과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병원을 찾았던 친구들은 그에게서 그 어떠한 부정적인 느낌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딸 프랜시스와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그는 안정을 찾는 듯 보였는데, 코베인이 딸을 본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딸을 만나고 나서 바로 다음날, 커트 코베인은 담배와 함께 시설을 탈출했다. 그리고 곧바로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통해 시애틀로 돌아갔다. 비행기 안에서 또 다른 전설적인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더프 맥케이건이 그와 아주 가깝게 앉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마주쳤던 커트 코베인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과는 다르게 커트 코베인은 4월 8일, 자택에서 샷건으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유서도 그의 품에서 함께 발견됐는데, 안에는 그의 어린 시절 상상친구였던 ‘보다(Boddah)’에 대한 내용과 “근 몇 년간 노래를 듣는 것은 고사하고 작곡이나 독서, 작문에서조차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라는 진실한 그의 심정이 쓰여있었다.